한양도성길 트레킹 2부 (숭례문구간-남산구간)

김평진 기자 / 기사승인 : 2023-04-09 10: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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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써치] ‘한양도성길’은 총 6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새해 첫날 한양도성길 ‘백악구간’과 ‘인왕산구간’ 2개 구간 트레킹을 마치고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 45분경 한양도성길 셋째 구간인 ‘숭례문구간’ 트레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한양도성길 숭례문구간’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정동과 숭례문(남대문)을 지나 남산 기슭 백범광장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는 미국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에 설립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 가운데 하나로, 장로회 측의 ‘새문안교회’와 더불어 개신교 교회의 모태로 불리우고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이필주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가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이 교회의 장로를 지냈다.



‘숭례문구간’은 서울 도심 중심부에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대부분의 성벽이 철거되었다. 현재 ‘숭례문구간’에서 한양도성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세 군데 있다. 밀레니엄힐튼서울과 SK남산빌딩 뒤쪽의 성벽,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퍼시픽타워로 이어지는 길가에 담장처럼 남아있는 성벽 일부, 창덕여자중학교 담장 아랫부분에서 남아 있는 50m 정도의 성벽이 바로 그곳이다.

필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발걸음을 출발하여 정동(貞洞)으로 접어들었다. 정동 입구에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지나 오후 1시 51분 정동 옛 이화학당 건물에 도착하였다. ‘이화학당’은 1886년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이 창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은 1887년 왕후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1915년 이화학당 교사로 지어진 건물이 현재도 남아 있는데 지금은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현재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서초동에 있고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은 양재동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1995년 이전에는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지방법원이 모두 서소문동 37번지에 있었다. 1928년 서소문동 37번지에 경성복심법원 및 경성지방법원으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1948년 이후부터 대법원 청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대법원 등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대법원 건물이 비게 되었는데, 원래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을 파사드(Facade 전면부)만 그대로 보존한 채 건물을 신축하여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정동길 걷기를 계속하여 오후 1시 55분 ‘정동제일교회’에 도착하였다. ‘정동제일교회’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회인데, 고딕풍의 붉은 벽돌건물은 1897년에 완공된 것으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필자는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오후 1시 57분경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다다랐다. 이곳은 원래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을 파사드(Facade 전면부)만 그대로 보존한 채 신축한 곳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면부에 남아 있는 옛 대법원 건물의 역사적, 건축학적 의미를 잠시 상고한 뒤 필자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배재학당 동관’을 통과한 뒤 서소문로에 접어들었다.

 

숭례문. ‘숭례문(崇禮門)’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한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루와 누각만 남은 상태였지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2008년 2월 화재로 2층 문루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2013년 5월에 복구되었다.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양녕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문(門)과는 달리 세로로 내려 쓰여져 있다. 이처럼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라는 설, 숭례문의 예(禮)가 사람을 바로 세우는 덕목이라서 그랬다는 설 등이 있다.


서소문로 도로를 건너 옛 호암아트홀 앞과 퍼시픽타워, 대한상공회의소를 지나 오후 2시 11분 숭례문에 도착하였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퍼시픽타워에서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이어지는 길가에는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지금도 남아 있다.

‘숭례문(崇禮門)’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하는데,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루와 누각만 남은 상태였지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2008년 2월 화재로 2층 문루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2013년 5월에 복구되었다.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양녕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문(門)과는 달리 세로로 내려 쓰여져 있다. 이처럼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라는 설, 숭례문의 예(禮)가 사람을 바로 세우는 덕목이라서 그랬다는 설 등이 있다.

 

 

백범광장 내 백범김구 동상. 남산 백범광장에는 백범(白凡) 김구 선생님의 동상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님의 동상이 있으며 바로 위에 ‘안중근의사기념관’도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 인물들의 동상과 기념물 등을 설치한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지냈으며 1949년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 당했다.

 

 

필자는 수난과 복원이 반복된 숭례문의 역사를 잠시 상고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남대문시장 입구를 지나 남산공원으로 올라가 오후 2시 29분 남산 백범광장에 도착하여 ‘한양도성길 숭례문구간’ 트레킹을 마쳤다.

남산 백범광장에는 백범(白凡) 김구 선생님의 동상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님의 동상이 있으며 바로 위에 ‘안중근의사기념관’도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 인물들의 동상과 기념물 등을 설치한 것이다.

필자는 남산 백범광장 김구 동상 앞에서 잠시 독립운동에 피땀을 바친 선열들에게 묵념을 한 뒤, 다시 트레킹을 재개하여 ‘한양도성길 남산(목멱산)구간’ 산행을 시작하였다.


잠두봉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풍경. 남산 서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잠두봉’이라 불리었다. 잠두봉에서는 포토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빌딩숲이 한눈에 조망된다.

 


‘한양도성길 남산(목멱산)구간’은 남산 백범광장에서 시작하여 남산 정상(해발 270m), 국립극장, 반얀트리호텔을 지나 장충체육관 뒷길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필자는 오후 2시 30분경 남산 백범광장을 출발하여 남산 정상을 향하여 급경사의 계단길을 올라갔고 오후 2시 47분 남산 서쪽 봉우리인 잠두봉에 도착하였다. 잠두봉에는 포토아일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서울 도심의 빌딩숲이 한눈에 보이는 등 확 트여진 조망포인트로 유명하다.


남산서울타워. 남산 정상에는 송신탑이자 전망타워로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남산서울타워’가 있다. 송신탑과 전망대가 있으며 아래층에는 복합문화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남산서울타워의 소유주는 YTN 이다.



다시 오르막 계단길을 계속 걸어 오후 2시 56분 남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남산 정상 부근에는 목멱산 봉수대 터, 팔각정, 남산서울타워가 자리잡고 있다. ‘목멱산 봉수대 터’는 조선시대 전국에서 올리는 봉수의 종착점이었고, 남산 팔각정은 원래 조선시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였는데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없어진 것을 제1공화국 때에 원 국사당 자리에 팔각정을 지었다. ‘남산서울타워’는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 중의 하나로 전망탑에서는 360도 회전하면서 서울시내 전역을 조망할 수 있다.

필자는 남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서울시내 전경을 조망한 후 오후 3시경 남산 하산길을 시작하였다.

 

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남산 정상에서는 서울의 상당부분이 조망된다. 종로구, 중구, 성북구, 용산구 뿐만 아니라 한강 건너 서초구 및 강남구 등도 보이며, 여의도가 있는 영등포구도 남산 정상에서는 조망된다. 남산 정상에서 보는 서울 풍경은 외국인이 꼭 봐야하는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한양도성길은 남산 정상에서 동쪽 나무계단길로 이어지는데 이곳의 성벽 상당부분은 조선 초기 태조 때 한양도성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필자는 조선 태조 때 백성들이 힘들여 쌓은 남산 성벽의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쳐다보면서 동쪽 나무계단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고 어느덧 길은 ‘국립극장’ 앞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오후 3시 29분 장충동 ‘국립극장’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1973년 건립된 국립 공연예술 종합극장으로, 1974년 광복절 경축식 행사 도중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필자는 ‘국립극장’을 지나 계속 걸어 오후 3시 38분 반얀트리호텔로 접어 들었다. 반얀트리호텔 뒷문 오른쪽 오르막길 가에 ‘남소문 터’ 표석이 있다. ‘남소문(南小門)’은 세조 때 도성 안에서 광희문을 통해 한강으로 가는 길이 멀다는 이유로 새로 만든 문인데,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예종 때 폐쇄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남산 동쪽 성벽. 한양도성길은 남산 정상에서 동쪽 나무계단길로 이어지는데 이곳의 성벽 상당부분은 조선 초기 태조 때 한양도성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채 6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반얀트리호텔부터 연결되는 장충체육관 뒷길은 평지부의 석성 형태의 성벽이 남아 있다.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상대적으로 큰 돌을 아랫부분에 놓아 균형을 유지하는 형태로 성벽이 쌓여져 있다. 필자는 장충체육관 뒷길을 지나 오후 3시 58분 장충체육관에 도착하여 ‘한양도성길 남산(목멱산)구간’ 트레킹을 끝마쳤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개장한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배구, 농구, 핸드볼 경기가 가능하며, 필자에게는 대학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대학 배구리그를 자주 관람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장충동 ‘국립극장’은 1973년 건립된 국립 공연예술 종합극장 이다. 국립극장은 해오름극장(대극장), 달오름극장(소극장), 별오름극장, 하늘극장(원형 야외무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극장 대극장은 1974년 광복절 경축식 행사 도중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곳이다.

 

 

한양도성길 ‘숭례문구간’과 ‘남산(목멱산)구간’ 트레킹에 걸린 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총 2시간 14분이 소요되었다.

# 한양도성길 트레킹 2부(숭례문구간-남산구간) 코스 : 돈의문박물관마을(13:45) - 정동 옛 이화학당(13:51) - 정동제일교회(13:55) - 서울시립미술관(13:57) - 남대문[숭례문](14:11) - 남산 백범광장(14:29) - 잠두봉(14:47) - 남산 정상 N타워(14:56) - 남산동쪽 나무계단길(15:16) - 국립극장(15:29) - 반얀트리호텔(15:38) - 장충체육관(15:58)

장충체육관 뒷길 성벽. 반얀트리호텔부터 연결되는 장충체육관 뒷길은 평지부의 석성 형태의 성벽이 남아 있다.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상대적으로 큰 돌을 아랫부분에 놓아 균형을 유지하는 형태로 성벽이 쌓여져 있다. 성벽을 자세히 보면 ‘생(生)’자 (천자문 42번째)와 ‘곤(崑)’자 (천자문 47번째)가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찾을 수 있다 이 구간의 성벽은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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